오형규의 도쿄 리포트 (1) 의욕잃은 만성 중증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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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일본의 진짜 위기는 초(超)저금리 상태에 안주해 있다는 점이다. 국채를 늘려도 금리가 안 오르니 재정은 방만해지고, 기업은 저수익에도 생존 가능하니 국제경쟁력을 잃고 있다." 일본의 추락 이유로 도이 다케로 게이오대 교수는 '초저금리 원죄론'을 꼽았다. 비정상적으로 낮은 금리로 인해 활력은커녕 의욕마저 잃고 있다는 얘기다. 작년 311 대지진 이후 1년 만에 둘러본 일본은 무력감과 꽉 막혔다는 의미인 '폐색감(閉塞感)'에 휩싸여 있었다. 만성화된 경제위기에 순응 지난 7일 오후 10시30분, 도쿄 호텔방의 침대가 좌우로 흔들리며 울렁증이 느껴졌다. 진도 3의 지진이었다. 이튿날 일본인들은 한결같이 무덤덤했다. 일상화된 재난에 그저 순응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숙명론'이 대지진 이후 경제사회 전반에도 똑같이 퍼지고 있다는 점이다. '제로금리' 정책은 만 10년이 됐다. 예산의 48%를 조달하는 국채를 늘려도 연 1% 안팎인 금리가 안 오르니 괜찮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고 도이 교수는 진단한다. 국채의 95%를 일본 내에서 소화하기 때문이다. 세계가 보는 일본은 '만성 중증환자'다. 국가 채무는 국내총생산(GDP)의 200%가 넘고, 신용등급(AA-) 추가 강등 가능성도 예고됐다. 지난해 31년 만에 무역적자를 냈고, 소니 파나소닉 등 간판 전자기업들은 수천억엔대 적자 늪에 빠졌다. 국제금융시장에선 일본 국채 금리가 2~3년 내 급등할 것이란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정치권 산업계 국민 모두 뭘 해도 안되니 '그냥 이대로 살자'는 기류가 팽배하다. 다케모리 ?페이 게이오대 교수도 "어떤 산업이나 큰 벽에 부딪혀 있고, 이제야 기업 들을 합친들 기술력이 떨어져 이길 수도 없다"며 일본 시스템의 피로감을 걱정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65세 이상 고령자가 인구의 22.8%에 달하는 세계 최고령국이면서, 합계출산율은 1.39명에 불과하다. 복지를 안 늘려도 해마다 복지비용이 1조엔(15조원)씩 불어나는 구조다. 다케이시 에미코 호세이대 교수는 "1억2800만명인 인구가 2050년이면 9700만명으로 줄어들 전망인데 이미 유권자들이 고령화돼 고령복지 삭감이 어렵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채권국으로서 '우아한 고령국가'로 늙어가자는 패배주의가 확산되는 이유다. 경제를 망치는 '불임정치' 정파 이해에 따라 움직이는 '3류 불임(不妊)정치'는 암적 존재다. 국민들은 불신을 넘어 혐오하는 수준이다. 재정문제의 유일한 해법인 소비세 인상도 녹록지 않다. 노다 요시히코 내각은 5%인 소비세율을 2015년까지 10%로 인상한다는 방침이지만 반대 여론이 40%를 넘는다. 도이 교수의 추산에 따르면 국채 대신 세수로 재정을 충당하려면 소비세율을 25%까지 올려야 한다는 계산이다. 이케다 모토히로 니혼게이자이신문 논설위원은 "국가채무가 그리스보다 심각해 증세 외엔 답이 없는데도 여당인 민주당 내에도 반대세력이 있고, 소비세 인상안을 공약했던 자민당은 야당이 된 뒤 협상카드로 활용해 상황이 여의치 못하다"고 설명했다. 국립대인 정책연구대학의 시라이시 다케시 학장은 "정치가 (소비세 인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시장이 폭력적으로 응징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에 거는 기대와 우려 한국과의 경쟁에서 밀린 일본 기업들은 정치권에 엔고와 비싼 전기료, 세계 최고인 법인세(40%), 부진한 자유무역협정(FTA) 등에서 한국만큼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구보타 마사카즈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 전무는 여기에다 탄소 감축 비용, 경직된 노동시장을 합쳐 6중고에 시달린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정치는 막혀 있고 정부 운신폭도 극히 좁기 때문이다. 한 가닥 기대를 거는 게 중국이다. 세구치 기요유키 캐논글로벌전략연구소 연구주간은 "중국에서 1인당 소득 1만달러를 넘는 도시가 베이징 등 19곳이고, 인구는 일본 전체보다 많은 1억4034만명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본에 중국은 경제의 탈출구인 동시에 안보의 위협 요인이다. 시라이시 학장은 "일본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커가는 중국과 교역을 확대하되 안보는 동맹국인 미국을 비롯해 한국 호주 인도 인도네시아 등과 관계를 강화하는 것뿐"이라고 지적했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2012년 2월 13일